뼈부러지도록 리어카 끄는 할머니
할머니(76)가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에 들어서자
손자 진원(가명·15)이가 재촉했다.
“할머니, 빨리 오라니까. 날씨도 추운데.
리어카에 실린 박스와 전선뭉치가
할머니 체구의 두 배는 돼 보였다.
방 안에 들어선 진원이는
빨갛게 언 할머니 손발을 이불로 덮었다.
김치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김치떡’으로 저녁을 때운 뒤,
할머니와 진원이는 마주 앉아
연필 깎는 칼로 전선 피복을 벗겼다.
1㎏에 4000원 쳐주는 구리선과
1㎏ 30원 하는 폐지를 팔아
버는 수입은 월 15만원.
정부 보조금과 구호단체 기아대책
지원금을 합쳐
월 42만원으로 겨울을 난다.
진원이는 6년 전부터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는 소식을 끊었고,
조선소 기술직으로 일하던 아빠는
두세 달에 한번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진원이가 고등학교 갈 때까지는
내가 살랑가.
고등학교는 졸업시켜야 편히 눈을 감는디
요즘은 학교가 끝나면
밤늦도록 할머니 일을 돕지만,
6년 전 진원이가 처음 혼자 살던
할머니네 집으로 왔을 땐 말썽만 부렸다.
철이 든 건 그로부터 2년쯤 지난 어느 날.
약수터에서 물통을 들어 달라는
할머니의 재촉에 심통이 나
돌멩이를 던졌는데,
할머니 발목에 맞아 뼈가 부러졌다.
“할머니 부축하면서 엉엉 울었어요.
할머니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 이후로 진원이는 달라졌다.
중학교에 입학해
복싱에 재능을 보인 진원이는
지난해 경북체전 복싱 라이트급에서
동메달까지 땄지만,
몇 달 전 복싱을 과감히 포기했다.
합숙에 들어가면
할머니 혼자 남기 때문이다.
지난 해 할머니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진원이는 의사를 붙들고
“할머니 없으면 못산다고 엉엉 울었다.
갈비뼈가 부러져 치료를 받은 할머니는
두달 만에 다시 리어카를 끌었다.
진원이의 가장 큰 소원은
할머니가 오래오래 사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주관
‘62일의 행복나눔’에
‘할머니 건강검진 한번 받아보게 해달라’고
진원이는 사연을 신청했다.
그러나 할머니 소원은 달랐다.
진원이 고등학교 갈 학비랑
교복값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에 조선일보·사회복지 공동모금회는
할머니 건강검진비와 치료비,
진원이 학비·교복비 등 500여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추운 겨울 난방비는 여전히 문제다.
내년 6월 지금 살고 있는
-조선일보/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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