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를 경우해서 해남으로 가는 길에는
영암을 꼭 지나쳐야 갈수 있는 길목이다
목포에서 좋은 추억을 안고 달려 왔기에 영암으로 가는 길은
모든 것이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남으로 갈수 있었다
영암은영산강 줄기의 마지막인 곳이기도 하다
영암으로 가는 길목에는 요즈음 무화과를 수확하여
도로 길가에는 무화과를 따서 파는 과정이 여기 저기에서 판내한다
꽃을 피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열매의 생김새는 둥근 모양, 납작하면서 둥근 모양, 원뿔 모양 등이 있습니다.
표면은 거칠고 뒷면에는 털이 있으며 상처를 내면 흰 젖 같은 유액이 나옵니다
봄부터 여름에 걸쳐 잎겨드랑이에 열매 같은 꽃이삭이 달리고 안에 작은 꽃이 많이 달립니다
겉에서 꽃이 보이지 않으므로 무화과나무라고 부릅니다.
해남으로 가는 길에 잠시 쉬면서 무화과 한상자를 사서
가는 길에 먹어 보았는데 쨈을 해 먹으면 괜찮을것 같다
무화과는 자연 식품이기 때문에 절대 씻어 먹으면 안된다
바로 먹을것이라면 물에 씻어도 되지만 그냥 먹으면 된다
대흥사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대흥사
절이 오래된 만큼 불렸던 이름도 변천사가 있다.
대흥사는 본래 ‘한듬절’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두륜산의 원래 이름이 한듬이었기 때문이란다.
조선왕조 말엽엔 대둔사와 대흥사란 이름이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한다.
그러다 일제시대 절의 이름이 대흥사로 표기되면서 대흥사란 명칭이 굳어졌다고 한다
대흥사는
호국불교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지금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표충사는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표하는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매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이곳에서 서산대제 및 나라사랑을 위한 각종 행사에 참여해 오고 있다
두륜산 정상의 모습
사찰 경내에는
대웅보전· 침계루· 명부전· 백설당 · 대향각· 천불전 · 용화당 · 봉향각 ·
동국선원 · 표충사· 강례재 · 서산대사유물관 · 대광명전 보련각
일로향실 .청신암· 진불암 · 일지암 · 만일암 · 북미륵암 등이 있다
대흥사 내에 있는 작은 연못 정원이다
스님께서 종을 치는 모습을 보았는데 시간마다 치는 것인지..잘 모르겠다
소원문 작성 하는곳/ 자기 소원을 적어 빌면 소원이 이루어 짐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돌담벽
대웅전 옆 뜰안에 있는 탑
대흥사의
숲길이 이렇게 품이 아늑한 느낌이다
절의 크기만큼 숲길의 길이도 길고 짙은 숲 터널이다.
대흥사의 숲길은 촘촘하고 길게 펼쳐진 숲이 아름답다
그러나 나무 잎과 가지들은 햇빛이 지나는 길을 완전히 막지 않는다
가는 길목에는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에는 수백년 묶은 동백 숲이 펼쳐져 있고
비자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맑은 산소를 내 품어 주는것 같다
대흥사로 가는 길목에는
계곡물이 앞에 흐르고 나무 그늘 시원한 곳엔 이미 가족끼리 돗자리를 펴고
한 여름날에 더위를 피하는 모습들이 여기 저기에서 눈에 띈다
숲길 따라 타박 타박 걷다 보면
숲길의 끝 자락 ‘누렁이’로 유명한 유선여관을 만난다.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 나와 유명한 누렁이는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지금이 2008년이니 이미 저세상으로 갔을지 모르겠다.
또한 강호동 1박2일에도 나왔다 하는구나
유선회관 안쪽 뜰안에 있는 장 항아리들이다
유선 여관 장 항아리 모습들이
이곳이 오래된 여관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남도의 맛을 보여 주는 곳이다
해남 대흥사...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 | 061) 534-5502
대흥사를 두루 관람한후에
해남읍에서 숙식을 하기로 하고 해남으로 가는 길목에
윤선도 생가 유적지란 표말이 있어 조금은 늦은 시간이지만
윤선도 생가로 달려 갔지만 기념관 사무실 전시관은 문을 다았고
관리인이 생가 유적지를 살펴 가보라고 일러주어 한번 둘려 보았다
해남고산 윤선도(1587-1671)선생의 생가
조선 인조때 정치가이자 가사문학의 대가인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곳
윤선도 문학관 모습
고산유고
6권 6책. 목판본. 1791년(정조 15) 전라감사 서유린(徐有隣)이 왕명에 따라 간행했다
지금 전하는 것은 1798년(정조 22)에 전라감사 서정수(徐鼎修)가
윤선도의 본가에 있는 목판본을 대본으로 하여 개편, 간행한 것이다
어부사시사
지은이가 65세 때 벼슬을 그만두고
전라남도 보길도 부용동에 들어가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이다
세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과 한몸이 되어 강호한정에 빠지는 것이 주제이다
4계절을 각 10수씩 40수로 하고 여음이 붙어 있다
윤선도 생가 유적지 모습
어우가
1642년(인조 20) 금쇄동에 은거하면서 지었다
서사에 해당하는 첫 수와 수·석.송죽·월에 대한 각 1수씩으로 되어 있다
둘째 수는 구름·바람과 비교하여 물의 그침 없음을 노래했다
셋째 수는 꽃·풀과 비교하여 바위의 변함없음을 노래했다
넷째 수는 꽃 피고 잎 지는 나무와 달리 눈서리를 모르는 소나무의 뿌리 깊음을 노래했다
다섯째 수는 나무도 풀도 아니면서 곧고 속이 비어 있는 대나무의 푸르름을 노래했다
여섯째 수는 작지만 밤에 높이 떠서 만물을 비춰주는 달의 말없음을 노래했다
자연관찰을 통해 의미를 끄집어내고 그것을 인간이 지켜야 할 덕목과 연결해 생각하도록 언어화했다.
고산 윤선도선생은
우니나라 문학사에서 송강 정철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으니
송강이 가사문학의 대가라면, 윤고산선생은 시조문학의 으뜸이었다
.
국문학의 비조인 고산 윤선도 선생은
사대주의와 한문문학의 밀림 속에서도
우리 국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갈고 닦아내서
주체적 민족문화의 지평을 활짝 열어놓은 분입니다
고산 사당
선생의 자주적 문화정신과 업적에 대하여 늘 생각하고
그분의 정신과 업적을 이어 나가고자 애써 자신을 다스려나 간다면 이야말로
위대한 조상의 후예로써 우리가 마땅히 하여야할 수분의 도리라 할 것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개인공원
연못과 연못사이에 정자를 만들고 풍류를 즐겼다한다
개인 : 어른 1000원 / 청소년 700원
단체(30명이상) : 어른 700원 / 청소년500원(청소년 : 8세 ~ 18세)
무료입장 : 65세이상 경로, 장애인, 광주민주화운동, 국가유공자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번지 일대
조선 중기의 문신·시조작가
정철·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의 한 사람으로,
서인 송시열에게 정치적으로 패해 유배생활을 했다
윤선도 선생의 가르침처럼 오래된 고택과 기념관을 비롯
주변 사적지를 잘 관리하여 후손들에게 물려 주기를 바라며...
2010.8.휴가중에/해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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