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과 시 모음/마음을 울리는 글

슬프도록 아름다운 섬 소록도

행복사 2010. 11. 2. 17:04


 

그곳에 들어서면 가슴이 아려온다.

눈물이 맺힌다. 한서린 땅,
소록도. 하지만 더없이 맑고 깨끗한 영혼들의 쉼터
동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철저히 그들을 나의 세계에서
소외시켰던 스스로의 비정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한하운의 시집을 꺼내 읽는다. 중학교 때인가,
국어 교과서에서 충격적으로 만났던 그 시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소록도(小鹿島)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딸린 섬으로
한센병 환자를 위한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소록도 천사 수녀… 그녀들은 백로였지
머리 하얗게 센 조창원(趙昌源?80) 할아버지는 요즘 종일 그림을 그린다.
그림마다 어김없이 백로 두 마리가 등장한다. 백로는 수녀다.
45년 동안 소록도병원에서 봉사를 하다 지난해 11월 21일 고향
오스트리아로 떠난 마리안느?마가렛 수녀를 백로로 그리고 있다.
고향인 평양 사투리가 짙게 남아 있는 할아버지는 8년 동안
소록도병원장이었다. 육군 대령 군의관이었던 그는 5?16 군사정변
후 1961년 9월 소록도로 갔다. 이청준(李淸俊)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간척사업을 무섭게 몰아붙이던
조백헌 원장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와 수녀들의 인연은 특별하다. “내가 가보니까 가장 필요한
것이 영아원과 보육소더란 말이디" 아기들이 태어난 다음에 엄마랑
바로 떨어지면 한센병이 전염되지 않거든.” 할아버지는 시설이 없어
아이들이 천형(天刑)을 물려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소록도 가던 그 해 광주 대교구의 미국인 신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수녀들이 섬에 들어온 첫날 깜짝 놀랐단다. “마리안느 수녀님은 키가
나만했어. 내가 1m78㎝인데 덩치도 좋았지. 마가렛 수녀님은
호리호리했고. 스물예닐 곱살 금발 수녀 두 명이 소록도에 오니까
섬이 난리가 났디. 생전 외국인을 본 적이 없었거든.” 수녀들이
소록도에 온 것이 지난 1962년 2월. 할아버지 그림 속에선 소록도
파란 하늘 무지개 너머로 백로 두 마리가 날아오는 것으로 표현됐다.
소록도 사람들이 정작 더 놀란 것은 수녀들의 외모가 아니었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환자들의 썩어가고 문드러진 팔과 다리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그것도 맨손으로. “나도 명색이 의사(醫師)인데 너무 부끄러웠다
그전까지 우리 병원 사람들은 마스크에 고무장갑 끼고, 고무장화
신고 완전 무장하고 나서야 환자들을 치료하곤 했거든….
” 할아버지는 수녀들이 맨손으로 치료하는 것을 본 다음에도 병원
사람들의 치료방법은 바뀌지 않았다며 또 부끄러워했다.
할아버지 그림 속 백로 두 마리는 부리에 핀셋을 물고 문드러진
발가락에 약을 바른다.
“그 건장한 마리안느 수녀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2000년에는
장암에 걸려서 오스트리아에 가서 장을 1m20이나 잘라 냈다는 거야.
6개월 동안 수술 받고 나서는 소록도로 다시 돌아왔더란 말이디.
그게 어디 사람인가.”

지난해 11월 22일 수녀들은 한국을 떠나기 직전 할아버지에게
타이핑된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가끔 저희가 충고해주는
말이 있는데, 그곳에서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리안느 올림. 마가렛 올림.”

수녀들이 한국을 떠난 직후 할아버지는 그이들을 기리는 유화 22점을 그려 왔다.
그림은 소록도에 조성될 ‘마리안느?마가렛 수녀 기념관’에 놓이게 된다.
기념관은 올해 소록도병원이 만들어진 지 90주년이 되는 날에
맞춰 문을 열 예정이다. “소록도 역사가 90년인데, 그이들이 45년을
봉사했으니 섬 역사의 반을 보고 간 거거든. 다시 우리 땅에 그런 분들이
오실지 싶어.” 그림을 쓰다듬는 할아버지의 손이 계속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