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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서

행복사 2010. 9. 17. 08:51

 대한문(덕수궁의 정문)

 

정전인 중화전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인화문을 사용했으나

1902년 궁궐을 크게 중건하면서 중화전과 중화문,

그리고 외삼문인 조원문을 세워 법전의 체제를 갖추었다

 

 

인화문의 자리에는 건극문을 세우고

조원문 동쪽에 대안문을 세워 정문으로 사용했다

1904년(광무 8)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06년(광무 10) 재건하면서 대한문으로 고쳐 불렀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 우진각지붕으로 1914년 도로확장 공사 때문에

궁 안쪽으로 옮겨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겹처마에 단청을 했으며 각 마루에 양성을 하고 취두.·용두.·잡상을 얹었다

현판은 당시 궁정대신 남정철이 썼다

 

 

덕수궁 앞 대한문에서는

수문장 교대식이 있어 지나가는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우리나라의 옛 역사 현장을 수문장 교대식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에 관광객은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았고 정겨워 보였다

 

 대한문 앞 수문장 교대식 모습

 대한문 앞 수문장 교대식 모습

 

대한문에서

매일 세 차례(오전 11시30분, 오후 2시·3시30분)

열리는 왕궁수문장 교대식 특별한 볼거리다

 

 

 

 대한문을 통과하면 중화문,중화전으로 들어가는 길목

함녕전의 뜰앞 모습

 

 중화문

 

덕수궁의 중화전 및 중화문

각각 덕수궁의 정전과 정전으로 드나드는 정문이다

 

 중화전... 보물819호 (덕수궁의 중화전 및 중화문)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이다.

경운궁의 정전은 즉조당이었는데, 고종대한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1902년즉조당 앞에 새로 중층 건물을 지어 중화전이라 하였다.

경운궁 중화전은 고종황제가 경운궁에 재위하는 동안 정전으로 사용하였던 건물로

광무 8년(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06년단층 전각으로 중건되었다.

 

 

중화전 앞뜰에는 공식적인 조정회의나 기타 국가적인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들의 위치를 표시한 품계석이 어도좌우로 배열되어 있다

 

 

원래 중화전 영역 주위에는 장방형으로 2칸 폭의 행랑이 둘러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동남부 모퉁이의 7칸만 남아 있다

 

광명문

 

자격루,신기전,흥천사 종이 보관되어 있는 곳

광명문은 함녕전의 정문으로 1897년 건립되었으나, 1

904년 불에 타 함녕전과 더불어 같은 해에 다시 지었다

그 뒤 현 석조전 별관을 이왕가 미술관을 건립하면서,

함녕전 행각 앞쪽에 세워져 있던 것을 1938년 현재의 위치인

중화문 남서쪽으로 옮겨놓게 되었다

1900년에 제작된 덕수궁 평면도를 보면 대한문을 지나,

금천교 건너 중화문을 향해 가다가 조원문에 먼저 이르게 된다

원래 광명문은 조원문 입구 바로 오른편으로 들어가 함녕전에 이르는 문이다

 

 석조전 서관

 

석조전 서관은

1938년 완공한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자주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석조전

 

고종황제가 침전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짓는 서양식 석조 건물이다

 

덕수궁에 서양식 건물들을 건립한 것은

대한제국 근대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석조전 정원

 

석조전은

1층에는 시종이 기거하는 방과 부속시설이고

2층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이고

3층에는 고조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석어당

 

 즉조당과 준명당/현재 일부 공사중

 석어당

 

덕수궁 안에 유일한 목조2층 건물

이곳에서 고종황제가 승하한 곳이라 한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폐왕이 된 후

이 곳 석어당에 끌려와 문초를 당했다.

그 이전에 인목대비가 유폐된 곳이기도 하다

 

 석어당 딧편 모습

 

덕수궁에서

왕이 집무를 보던 편전인 석어당은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덕수궁이 궁으로 존재하게 해주는 중심 건물이다

이 곳은 임진왜란때 선조가 임시로 거쳐하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광해군이 폐위되고 나서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석어당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건물자체에는 화려함을 느낄 수는 없고

소박한 기풍이 있는 건물이자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기도 하다

 

 석어당 뒷편 모습

 정관헌옆 측면 모습

 

서양과 한국의 건축양식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로

2004년 등록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었다 한다

 

 정관헌 앞면

 

정관헌은 태조·고조 광무제·순종 융희제의 어진을 봉안하였으며

경운궁 안에 지은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고 정면 7칸 측면 5칸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으며, 정면과 좌·우측 발코니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고,

회색과 붉은색 벽돌로 벽면이 다양하게 장식되어 있는

서양 건축 양식에 전통 목조 건축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모습이다.

 

 석어당과 정관헌으로 통하는 문

 함녕전...보물820호 (덕수궁 함녕전)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황제의 생활공간(침전)이다

광무 1년(1897)에 지었는데 광무 8년(1904) 수리공사 중 불에 타,

지금 있는 건물은 그해 12월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이곳은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 준 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서쪽 뒤로 4칸을 덧붙여 평면이 ㄱ자형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인데 위쪽에 여러 가지 조각을 장식해 놓고 있다

 

함녕전

 

더욱이 지붕 모서리 부분에 조각들(잡상)을

나열한 점은 침전 건축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특이한 구성이다

 

함녕전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부리 모양으로

간결하게 장식한 익공 양식이며 구름과 덩굴문양으로 꾸몄다

 

건물의 천장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고,

네면 모든 칸에 벽을 두르지 않고 창을 달아 놓았다

 

 함녕전과 덕홍전

세종대왕 동상/덕수궁 뜰안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은 1~1.5㎞에 불과하지만

서울의 가장 낭만적인 길로 꼽힌다

 

돌담길이 끝날 즈음이면 서울시립미술관을 지나

정동교회, 이화학당(현 이화여고), 옛 러시아공사관 등이 이어진다

 

구한말 역사적 사건들이 거의 이 길을 따라 일어났음을 기억한다면

가벼운 산책을 근현대사 탐방으로도 전환시킬 수 있는 곳이 아닌가 한다

 

 

2010.9

덕수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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