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신문왕릉 묘
경주는
시내 중심가는 물론이요 야산자락이나
구릉에는 반드시 귀족이나 왕릉으로 여겨지는 무덤들이 자리한다
신문왕릉 들어가는 문
낭산 자락 아래에도 왕릉들이 즐비하다
신문왕릉, 효공왕릉, 진평왕릉….
신라 신문왕릉
신라 신문왕릉 묘
반대 세력을 억누르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도입하였다.
설총이 아첨하는 신하를 ‘화왕(모란)’, 충언하는 신하를 ‘할미꽃’에 견주어,
간신을 조심하고 충신을 가까이 두라는 내용의 〈화왕계〉를 지어 바치자,
신문왕이 충언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둥근 봉분 둘레를 벽돌처럼 다듬은 돌 5단을 쌓고,
갑석을 덮은 뒤, 석축을 지탱하기 위한 삼각형의 돌 44개를 기대어 놓았다.
고분 주변에 십이지신상을 두르기 전 단계의 양식으로 주목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문왕을 낭산 동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효소왕릉이 ‘망덕사의 동쪽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므로,
신문왕릉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효소왕의 능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신문왕릉은
도로 바로 우측에 긴 담장이 있어서 찾기가 수월하며,
주차장도 넓습니다.
주차장 정면 담장 중간에 위치한 삼문을 들어서면 신문왕릉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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