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은 1095년부터 1272년까지 일곱 차례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이슬람 세계와 벌인 전쟁이다.
교황 우르반 2세는 1095년 교회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성지 회복을 향한 메시지에서
“이것은 거룩한 사업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십자군에 참여한 자는 모든 죄가 용서받을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믿음이 두터운 유럽의 영주들이 군자금을 모으고
가병을 파견,이슬람 세계를 정복해나갔다.
십자군이 주둔하면서 기독교 세력의 확산을 노렸던 지역 중 하나가
십자군이 주둔하면서 기독교 세력의 확산을 노렸던 지역 중 하나가
요르단 소재 카락성이다.
카락성은 구약시대 모압 왕국의 수도였던 카락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왕의 대로’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현재의 카락성은 십자군전쟁이 한창이던
1142년 볼드윈 1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멀리 사해와 요르단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락성은 지하 5층 규모로
완공에 5년이 걸렸을 정도로 견고하다.
지하엔 물 저장고와 병사들이 거주하던 좁은 방,
아치형 복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삼면이 좁고 깊은 협곡에 둘러싸인
해발 1000m의 가파른 산정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요새다
외부에서 성을 함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카락성에 주둔지를 정한 십자군은 이슬람의 전쟁 영웅인
카락성에 주둔지를 정한 십자군은 이슬람의 전쟁 영웅인
살라딘의 1년여에 걸친 끈질긴 고사작전에도 잘 버텨냈다.
카락성이 함락될 것 같지 않자 살라딘은 여동생을 투입했다.
살라딘의 여동생은 마치 거리의 여인처럼 십자군 병사들을 유혹,
카락성의 비밀통로를 알아내게 된다.
결국 비밀통로가 이슬람에게 넘어가자 1년여를
버티며 항전하던 십자군들도 1189년에 손쉽게 무너져렸다.
그렇게 견고하고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도 여자 한 사람으로 인하여
함락되고 말았다는 역사의 아이러니,,
아래서 올려다 본 카락성...
지금은 카락성 성벽안으로 집을 짓고 살고있다
카락성 관광객을 보호하는건지 ,,,
아니면 카락성을 보호하는 건지,,,
지켜서 있는 요르단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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