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 입구/정문이다
오랜만에 찾는 고양시이다
몇년전에 고양시 백석동에 살았던 곳이기에
반가운 제2의 고향 같은 정겨움이 있는 곳이다
서울에 있는 칭구들 모임이 있어 오는 길에
일산에 볼일이 있어 일을 마친후에
잠시 시간이 있어 처음으로 행주산성을 찾아 보았다
행주산성은/사적 제 56호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의 해발 124.8m의
덕양산 정상을 중심으로 하여
해발 70~100m에 이르는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는
포곡식의 토축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1km 정도이다
임진왜란(1592) 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흙을 이용하여 쌓은 토축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험한 절벽을 이용하면서 펼쳐지는 넓은 평야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 전기의 산성 형식과 같다
입구에 있는 권율장군 동상
또한 이곳에는 나의 조상 문중의 시조가 있는 곳이다
처음으로 찾는 행주산성에 대한 역사를 이제야 들러본다는게
나에게는 안타깝지만 좋은 역사 자료를
짧은 시간에 알고 간 다는게 행복한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행주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
행주산성을 올라가는 길목인데
봄철에는 개나리가 활짝 피어
이 곳을 찾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매년 행주대첩 행사가 열린다.
금년에는 3월14일 열린다
충장사 입구
행주산성에는
행주대첩비, 권율장군동상, 행주대첩기념탑,
충훈정(궁도장), 덕양정, 강정 등 토성이 있고
행주기씨 문종비 아랫쪽(토성) 밑으로 있다
1845년 행주대첩비/경기도 문화재 유형문화재 74호
선조35년(1602년)세운 대첩비로 풍우에 미멸되어 판독할 수 없어서
헌종11년(1845년) 행주나루터 기공사에 추가로 세운 비석이다
6.25때 기공사가 소실되자
1970년 충장사 앞으로 이전하였다
화강암비로 2.33mm이고
경기도 무형 문화재 74호로 지정 되었다
충장사 입구
충장사
충장사는 충장공 권율 도원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
원래 행주 나루터 기공사에 잇었으나 6.25사변떄 소실되고
1970년 행주산성 정화공사때 이름을 고쳐 복원한 곳이다
충정사 헌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다
대첩 기념관
기념 대첩관에는
임진왜란 당시 옛 무기고와 군량 창고가 있던 곳에
1980년 건립한 유물 전시관이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 군이 사용했던 신기전,화차 등
우수한 무기와 대첩기록화 등을 기록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대첩 기념관 정문
대첩 기념관/사진 촬영 금지
안내 책자에서 찍은 병기
충의정으로 올라 가는 길목
진강정
행주산성에서 한강과 인근 지역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보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쉼터의 역할을 하는 정자이다
진강정
진강정에서 내려다 본 인천공항 대교 모습
덕양정
덕영전
덕영정는 진강정과 함께
행주산성에서 한강과 인근 지역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보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쉼터의 역할을 하는 정자이다
1602년 행주대첩비/유형문화재 제74호
이 비는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권율장군이 왜병을 격퇴한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로서 1기는 선조 35년(1602)에
또 1기는 헌종 11년(1845)에 세운 것이다
현재 舊碑는 행주산성 정상 비각안에 있으며
新碑는 충장사 입구에 세워져 있다.
구비의 비문은 최립이 짓고 한석봉이 글씨를 썼으며 김상용이 전액을 썼다
비문 끝의 追記는 李恒福이 지었고 金玄成이 썼다.
이 비는 오래되어 마모가 심해지자 비를 새로 새기면서 한 때 방치되었으나
해방 후 비각을 세워 보존하였다.
그 이후 비각이 훼손되자 1970년 비각을 새로 개축하였다.
행주산성은
산꼭대기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내성과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2중구조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에워싸고 돌아,
자연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1970년 행주대첩비/높이 15.2m.화강석
이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땅이었으며,
서해안과 연결된 수로의 거점지역으로 남북 교통의 요충지대이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조각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오고,
물고기뼈무늬를 새긴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어서
고려시대까지도 사용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선조 26년(1593)에 왜병과의 전투에서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충의정
행주산성 영상 교육관으로 국민의 호국의식을 함양하는
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덕양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과 주위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충의정
덕양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
날씨가 푸여서 잘 안 보임/한강 전경
다리 건너 강서구 가양지구 아파트
덕양산 정상 공원
행주산성 토성으로 내려가는 계단
행주산성 토성
행주산성 토성(퇴뫼식)은
총 길이가 약 1km에 달하는데
1992년415m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 토성은 삼국시대 와당 및 퇴기 파편이 출토되어 있는 것을 보아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지 요새지 역활을 한것으로 판단된다
행주 토성아래에는
행주기씨대종중에서 건립하였다는 '행주기씨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행주기씨 유허비
기건선생묘 및 신도비/향토문화 제22호.덕양구 성사동 산54
기응세선생묘/향토문화재 제23호.덕양구 성사동 산54
기준선생묘/향토문화재 제17호.덕양구 성사동 산144-10
묘는 원당전철역에서 한양골프장 방향인
성사동 사근절 마을에 서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묘소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장명등, 망주석 1쌍,
문인석 2쌍이 있는데 대부분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고
문인석 1쌍만이 당대의 것으로 보인다.
묘는 정부인 豊山洪氏와 합장되었으며 총 규모 21m 둘레의 원형묘이다.
봉분의 우측으로는 1966년에 새로 세운 吳億齡이 찬한 묘비와
최근 후손 기성도가 찬하고 세운 한글비가 세워져 있다.
묘소에서 약 300m 지점 아래에 위치한 신도비는
고종 16년(1879) 10월 건립한 것으로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의 통대석 비좌를 갖추었으며 비신은 대리석이다.
비의 높이는 184㎝, 너비는 66㎝, 두께는 33㎝ 규모이다.
신도비 구비는 신비의 앞 마당에 놓여져 있다.
기건(1390~1460)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호는 靑坡 또는 眩庵 이며 본관은 幸州이다
특히 이 산성은 선조 16년(1593) 권율의 전적지로서
임진왜란 3대첩중 하나인 행주대첩으로 유명하다
주차료는 소형 2,000원,입장료는 대인 기준 1,000원이다
2011년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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