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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경기전에서

행복사 2013. 7. 13. 21:30

경기전 정문/사적 제339호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는 즐거운 주말에

오랜만에 애향의 도시인 전주를 찾았다

전주에 도착하여 덕진공원에 곱게 핀

아름다운 연꽃을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하고

점심을 이곳 한옥마을에서 하고 경기전을 들렸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흥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홍살문

 

경기전 정문을 통과하면 홍살문이 나온다

홍살문이을 지나면 경기전인에 있는 정전이 나온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건물 구성은 중심 건물과 부속건물, 문으로 나뉘어 있으며

제사기능을 가진 건축물의 특성을 잘 따르고 있다

지금 이곳에 모신 태조의 영정(초상화)은

세종 24년(1442)에 그린 것을 고종 9년(1872)에 고쳐 그린 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경기전안에 있는 정전은 보물 1578호이다

 

정전(보물 1578)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보물 931)을 봉안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태조 이성계 어전(보물 931)

 

 

정전(보물 1578)은 지대석과 면석 및 갑석을 갖춘

기단 위에 세운 다포계 형식의 맞배집으로,

그 전면 가운데에는 1칸 규모의 기단을 돌출시켜 쌓고

그 위에 첨각을 세워 배례청을 시설했다

 

 

마치 능침의 정자각과 같은 형상이다

이 첨각 기단의 3면에 벽돌을 깐 보도를 연결하였다

 

전주사고 가는 길목

전주사고로 가는 길목에는 대나무 숲

 

 

전주사고/조선실록을 봉안했던 곳

 

전주사고 건물

 

 

1439년(세종 21) 사헌부의 건의로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던 경기전 안에 설치되었다

처음에 실록들을 여러 차례 옮겨 보관하다가

445년 12월 서울 춘추관, 충주·전주·성주 사고에 각 1부씩 봉안하게 했다

세종실록부터 편찬할 때마다

주자로 인쇄하여 각 사고에 1부씩 보관하도록 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모두 병화로 불타고

4대 사고 가운데 전주사고의 실록만 남았는데 이는 안의·손홍록의 공이 컸다

이들은 태인의 선비로 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금산에 침입했다는 소문을 듣고

곧 전주로 달려와 실록과 태조영정을 수호하던 경기전 참봉 오희길등과 상의해

태조부터 명종까지 13대에 걸친 실록 804권과 태조영정을 정읍 내장산으로 옮겼다

 

조선실록/임진왜란때 강화도 옮기는 장면 모습

 

다음해 7월 조정에 인계할 때까지 14개월 동안 무사들이 번갈아가며 지켰다

조정에서 사관을 내장산에 파견해 실록과 영정을 해주·강화도·묘향산으로 옮겼다가,

1603년 7월부터 다시 출판하여 전주사고의 실록원본과 교정본 및 새로 출판한

3부를 합해 5부를 서울 춘추관과 마니산·태백산·묘향산·오대산에 사고를 지어 봉안했는데

전주사고의 실록원본은 마니산에 보관하였다

 

 

예종의  태실비

경기전에서 남동쪽 담장 부근에 예종의 태실 및 태실비가있다

작고 아담한 크기의 태실은 조선초기 고승들의 종형 부도와 흡사하다

태실비는 거북받침위에 통돌 하나로

이수와 몸돌을 깍은 대리석비를 올려놓은 것이 이채롭다

몸돌 옆면에는 예종대왕태실이란 각자가 태실의 주인공을 밝혀주고 있다

 

예종의 태실

 

어진 박물관 지하 전시실

 

어진 박물관은 상층은 홍보관 역활을 하고

지하실에 전시관이 잘 설치 되었다

 

 

어진박물관은

태조어진과 어진봉안 관련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국내 유일의 어진/왕의 초상 전문 박물관이다

 

어진 박물관 전시실

 

지상 1층 어진실에는 태조의 어진과 새로 베껴 그린

여섯 임금 (세종·영조·정조·철종·고종·순종)의 어진이 전시된다

1872년에 모사된 태조의 어진은 전용 수장고에 보관하였다

 

 

 

지하에는 역사실·가마실·기획전시실 등이 들어선다

역사실은 태조 어진 봉안 이후 각종 유물을 보관해 온

경기전의 내력과 의례 등을 수록한 경기전의

1872년 태조 어진을 모사하는 과정을 기록한 어진이모도감의궤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던 그림 일월오봉도,

경기전 제례에 사용됐던 각종 제기등이 전시된다



 

태조어진의 전주봉안 조선건국후 태조어진은 한양을 비롯하여

태조의 태생지인 영흥, 태조의 본향 전주, 신라의 수도 경주

고구려의 수도 평양, 고려의 수도이자

태조가 잠저시 살았던 개성 등 6곳에 모셔졌다

 

 향정/항정자

 

향정은 향로와 향합을 싣고 가는

조그마한 가마로  향정자라고도 한다

위 향정은 1872년 태조어진을 이안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4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지붕아래에는 공포를 장식하였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구성한 후 녹색으로 칠하였으며

추녀 하부에는 금칠을 한 풍경을 달았다

 

 

신연은 어진의 이안이나 봉안에 사용하였던 가마를 말하며

위 신연은 어진을 이안할 때 사용되었던 가마이다

대개 가마꾼 10명 이상 맨다. 지붕은 둥근 형태이며

꼭대기에는 호리병 모양의 정자(頂子)를 장시하였다

 

조선시대 가교

 

가교는 조선시대때 고관의 행차때 가마이다

1872년 태조 어진을 봉안할때 어진 봉안 책임자인

배왕대신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조 어전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어진으로 1872년(고종 9)에 모사한 진본이다

평상시 집무복인 익선관과 청룡포 차림으로

백옥대와 흑화를 착용한 전신상 어진이다

태조는 키가 크고 몸이 곧바르며, 귀가 아주 컸다고 한다

 

고종어전,철종어전

 

태조 진전 가운데 가장 먼저 건립된 것이

영흥의 준원전으로, 태조 7년에 태조어진을 봉안하였다

이어 그 다음 달에 경주에 태조어진이 봉안되었다

평양에 태조어진을 봉안한 것은 늦어도

태조가 승하한 태종 8년 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개성에는 외방 5곳 중에서 가장 늦어

태종 18 년 5월에 태조어진을  봉안하였다

 

영조 어전

 

 

제기고

 

제사때 사용하는 각종 그릇과 기구들이 보관 관리 된 창고

제기고 일반 그릇들과 달리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잘 보관 되었다

 

용실

 

이곳은 경기전의 제사에 사용할 음식을 만드는 방았간입니다

디딜방아와 절구를 두고 경기전 제례에 사용할 음식을 만들고

경건하고 신성한 장소로 여기는 곳입니다

 

드딜방아

전사청

 

이곳은 국가의 제사에 쓸 제수 준비와 제사상을 차리는

담당하는 전사관이 사무를 행하면서 제사 준비를 하는곳입니다

 

수복정

 

경기전의 제사에 관한 것을 맡아보는

낮은 직급의 벼슬아치들이 기거하던곳이다

 

경기전 서재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진 집으로 제각이라 하고

제관들의 재계의식을 위한 서재이다

 

수문장청

 

 

전주는 조선시대 한지 생산을 대표하는 곳이다

그래서 전주를 한지의 본가라고 한다

한지는 전주의 특산물이었으며

외교문서를 비롯한 국가 중요문서에 전주한지가 널리 쓰였다

 

 

전주는 조선 제일의 곡창지대

전라도의 수부로 전라감영이 소재했던 곳입니다
전주는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을 꽃피운 예향이었습니다
전주는 천년도시요 문화예술의 도시입니다

 

 

경기전은 조선 태종 10년에 창건된 곳으로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영정이 봉안된 곳입니다

 

 

고색 창연한 옛건물이 잘 보존 관리 되어 있고

경기전  내부에 조성된 공원에서는 휴식을 취하기 좋고

또한 경기전은 전주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에

근처에는 조선의 관사였던 객사와 풍남문이 있고

정동성당 및 전주한옥마을를 함께 두루 살펴볼 수 있어

전주의 역사와 애향을 느낄 수 있는것 같습니다

 

2013.7.13

전주 경기전에서